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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나기

초가삼간의 형태를 간직한 장태수선생의 남강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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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의 추위가 가시지 않았을 때 대한제국 말의 충신이었던 장태수가 살았던 집으로 찾아가 보았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남강정사는 그의 부친이 지은 것으로 헌종 7년 (1841)에 태어나 철종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고종대에 벼슬을 하며 선정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초가의 지붕은 다양한 유형을 지녀왔는데 초가지붕의 발달과 완성은 기와지붕을 낳게 한 모태였으며 지금은 흔하게 보는 처마는 초가집의 발달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과거 선조들이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행하던 지혜로운 풍습이기도 합니다. 

 

 

초가집은 손이 많이 가는 집이기도 합니다.  1년에 한 번씩은 전체적으로 관리하여 갈아주어야 하지만 기와지붕을 하지 못한 서민들은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짚으로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는 것이다. 

 

 

옛사람들이 살았던 초가지붕에 이엉을 얹는 것은 추수가 끝난 후  동짓달이 되면 겨울채비를 위해 삭은 초가지붕에 새 이엉을 얹어 새 단장하는 마을의 큰 행사였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가장 구하기 쉽고 서민들의 집에서 없어서는 안 될 초가지붕을 보수하지 않으면 1년이 힘들어지게 됩니다.

 

 

 


장태수 선생 생가는 전형적인 초가집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겨울이 시작된 지금 초가지붕을 갈기 위해 볏짚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초가삼간은  부엌 1칸, 방 2칸으로 구성된 일(一) 자형으로 초가의 구조는 일반 서민주택과 같으며 낮은 토단으로 된 기단을 형성하고, 토단 위에 호박 주춧돌을 놓아 굵기가 4촌 정도 되는 둥근 나무기둥을 세워 비슷한 굵기의 둥근 통나무로 도리와 보를 형성하게 됩니다.  

 

 

남강정사는 자연석을 2단 쌓기로 기단을 만든 후 정면 4칸, 측면 2칸 반 규모로 지은 一자형 겹집의 초가입니다. 

 

 

큰 기와집에는 사대부·토호들이 살며, 초가에는 그에 딸린 마름이나 노비들이 살았다고 합니다. 초가삼간이라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표현으로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주거의 최소 단위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집은 소박한 집으로 담집은 벽체를 쌓는 방법에 따라 구분되는데, 벽체를 토담 쌓듯이 한 것은 토담집이며 장태수 선생 생가는 넓지는 않지만 좁은 대청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도리 위에 서까래를 걸고 서까래 위에 산자널을 깔며, 알매흙(흙과 지푸라기를 물로 이긴 흙)을 덮은 것이 초가집의 특징입니다.  


 

 

벼를 수확하고 나오는 짚은 건축재료적인 면에서 매우 가벼우므로 건축구조의 목재 단면이 기와집에 비해 월등히 작아도 되며, 단열성이 뛰어나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초가지붕에 얹혀 있던 묵은 이엉을 걷어내고 가을철 막 탈곡을 끝낸 볏짚으로 용마름과 이엉을 만들어 지붕을 새 단장하면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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