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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나기

예산에 자리한 목은 이색선생 덕산 루산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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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이색선생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서천의 목은이색을 모신 문헌서원입니다. 저도 가본 적이 있었는데요. 거리는 조금 있지만 잘 조성된 문헌서원은 충청남도를 대표하는 서원중 한 곳입니다. 목은 이색의 본관은 한산이며 자는 영숙인 이색은 목은이라는 호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산에 자리한 목은 이색선생 덕산 루산영당은 예산군 삽교읍 평촌리라는 곳입니다. 

이곳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어서 목은 이색을 모신 예산의 영당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많지가 않습니다. 

나무들이 모두 잎을 떨구고 다음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름답게 새로 단장된 단청이 푸른 향나무 거목과 어울려 더욱 신선하게 느껴진 곳이었습니다.

정문의 역할을 하는 문충문옆으로 연학을 새긴 비가 있습니다.  문충문(文忠門) 오른쪽 앞에 세워진 "목은선생영당 연혁" 비 뒤에 새겨 놓은 글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한문으로 어렵게 되어 있는 부분은 좀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풀어 놓은 연혁이야기입니다. 1328년 경북 영덕에서 탄생하시어 14세 때 성균시 십운과(成均試 十韻科)에 등과하시어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셨다. 1396년 5월 7일 여주에서 천수를 누리시지 못하고 69세로 서거하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당앞에는 보호수가 있습니다. 본 영당은 수백년 내 수차 중수하였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며 파손이 심하여 1993년 예산군 화수회에서 경향각지의 일가들의 협찬을 받아 영당 전동을 새로운 기와로 올리고 단청도 선명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 

영당을 보기 위해 더 안쪽으로 들어가 봅니다.    서천 한산에 문헌서원에 있는 원본 영정도 원래 이곳에 있던 것을 옮겨 갔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영당의 규모는 크지느 않지만 옆으로 아름답게 단청을 칠해놓은 것만 보더라도 목은이색의 정신을 이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목은 이색은 야은 길재,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 말을 지킨 대학자 삼은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392년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피살이 된 것과 같이 엮여 금주로 추방되었다가 석방되었다고 합니다.

 

 

추후 조선이 건국되고 나서 이성계의 출사 요청이 있었으나 끝끝내 고사하고 이듬해 여강으로 가던 도중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떠났지만 이렇게 곳곳에 자신의 생각을 기리는 사당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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