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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나기

고령 대표인물 우륵을 생각하며 돌아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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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은 이제 수없이 접하다보니 익숙한 악기가 되어버렸습니다. 가야금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어렴풋하게 우륵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고령이 우륵의 고장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륵기념탑은 그런 우륵의 삶을 기리면서 돌아볼 수 있는 공간으로 영정각과 기념탑등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입구에 공원이나 휴게공간이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우륵을 기리는 공간에서 그의 삶을 조금 엿보아 봅니다. 가실왕의 명의 발다어 1년 12달의 본을 따서 12현의 가야금을 창제하였다고 하는데요. 음악인의 삶이었습니다. 




밥을 먹은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 이정도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살짝 버겁네요. 너무 빨리 올라가서 그런것일까요. 올해 유난히 더워서 그런것일까요.




가실왕이 우륵에게 이르기를, “모든 나라의 방언도 각각 서로 다른데, 성음(聲音)이 어찌 하나일 수 있겠는가?”라고 하여서 12곡을 지었다고 합니다. 




 우륵이 지은 12곡명은 「하가라도(下加羅都)」·「상가라도(上加羅都)」·「보기(寶伎)」·「달기(達己)」·「사물(思勿)」·「물혜(勿慧)」·「하기물(下奇物)」·「사자기(獅子伎)」·「거열(居烈)」·「사팔혜(沙八兮)」·「이사(爾赦)」·「상기물(上奇物)」입니다. 




저 조형물은 우륵이 만든 가야금을 연상하게끔 만드는 디자인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오신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자세히 보년 문양마다 모두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름의 강한 생기가 곳곳에 풀을 길게 자라게 만들고 에너지가 넘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륵은 490년경 대가야의 직할 현인 성열현에서 태어났는데요. 우륵의 고향인 성열현은 정치·문화적으로 발달된 지역이었고, 중앙 세력 즉 대가야의 왕명이 직접 하달되는 곳이라서 영향이 강했습니다. 







우륵이 살았던 곳이라고 생각되는 지역은 여러곳이 있지만 현재는 고령에 우륵의 생가가 복원이 되어 있습니다. 






우륵기념탑이 있는곳까지 올라오면 고령의 대가야읍이 구석구석이 보입니다.




가야금은 대가야연맹을 상징하는 악기였다고 합니다. 가실왕이 악사 우륵을 왕경까지 불러내 가야금을 만들고 아울러 12곡을 작곡하게 한 것은 백제의 침입에 대비하여 대가야 세력을 결속하고자 한 목적이 있었는데요. 정작 우륵은 신라에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망명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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