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장승은 나무장승보다 오랫동안 보존이 되어서 역사적인 의미를 오래도록 보존할 수가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요. 대전에도 석장승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남아 있는 것은 많지가 않죠.
법동에 가면 대덕구에 자리한 오래된 흔적에 대한 이야기를 접해볼 수 있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곳에 가시면 법동과 송촌동, 중리동등에 남겨져 있는 흔적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대덕구에 제가 아록 있는 석장승이 남아 있는 두 곳을 다녀보려고 합니다. 원래는 세곳이지만 법동 석장승은 도로를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곳이 있으니까요.
날이 많이 풀렸는데요. 다음주면 벌써 2월의 중반을 넘어가게 됩니다.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고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오니 금줄이 새로 쳐져 있었습니다. 법동의 돌장승은 원래 나무 장승이었는데, 약 300여 년 전에 돌장승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빨리도 지나가네요. 음력 정월 열나흗날 밤에 산신제와 거리제(장승제)를 지내는데 장승이 있는 지역에서 장승제를 지내곤 합니다.
이러헥 금줄로 마을을 닫아놓으면 한동안 마을 전체가 멈춰버린 시간으로 빠져든다고 합니다. 금줄로 차단되는 성스런 공간에서는 마을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제축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대덕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금줄을 쳐놓으면 아무도 범접할 수 없다고 터부한다고 합니다.
자연석에 눈·코·입 등을 다듬어 표현한 남·여 한 쌍의 돌장승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라고 해두었다고 하는데 자세히 보면 둘 다 대장군이라고 표현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새로 금줄을 쳐놓으니까. 마치 설연휴를 맞아서 옷을 새로입은 것처럼 보입니다. 금줄에는 한지를 매다는 경우가 ㅏㄶ다고 하는데요. 이는 밤에도 한지가 희게 드러나므로 구별할 수 있게 하는 이유라고 합니다.
이제는 여장승을 보려고 횡단보도를 건너왔습니다.
이 마을의 장승제는 장승의 조성시기와 맞물려 그 유래가 매우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표정속에서 우리 선조가 어떤 것을 생각했는지 미루어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이제 읍내동으로 건너왔는데요. 이곳에는 읍내동의 옛날 지명이기도 한 뒷골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장승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아까와 달리 두 장승이 나란히 모셔져 있는데요. 천하대장군은 높이 1.5m 정도의 사각형 돌기둥에 머리를 뾰족하게 처리하여 고깔모자를 쓴 든한 모습이고 지하대장군은 머리 부분부터 가슴 부위까지 표현되어 있습니다.
남녀 장승 모두 무서운 얼굴이 아니라 부드럽게 웃는 표정으로 만들어져 있씁니다. 장승제 때 고운 황토를 물에 풀어서 장스엥 빗자루로 칠하는데 이것을 옷을 입힌다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금줄문화의 정신은 마을의 일이며 그 고유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대덕구에 자리한 석장승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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