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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나기

칠곡의 대표적 인문학 여행지로 자리잡아가는 매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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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칠곡에 자맇나 매원마을이 두번째인데요. 첫 번째로 왔을 때와 두 번째로 와보니 그 느낌이 다릅니다. 거닐며 살아가며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일생일까요. 사람이 태어난 곳을 보통 고향이라고 하지만 고향에 대한 기억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매원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매원마을에서 사시던 분들에게는 그런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향에 대한 추억이 생기기 위해서는 학창 시절을 그곳에서 보내야 머릿속에 각인이 됩니다. 

고향은 아련한 추억이 남겨진 그런 곳이지만 그 공간은 다른 에너지를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칠곡의 대표적인 고택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매원마을이 있습니다. 


칠곡군에 자리한 매원마을은 매화 낙지형(매화가 떨어진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칠곡군의 군을 대표하는 꽃이 매화이기도 합니다. 


칠곡군의 군화가 매화인 ㄱ서이죠. 매화꽃의 향기는 생각 속에서나 마음속에서나 아련하고 조용하게 퍼져나가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고택이 많이 남아 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가 2년 전인 1595년(선조 27년)에 이곳에 광주 이 씨가 입촌하면서 집성촌을 이룬 것이 초기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매원마을은 맨 위쪽을 상매라 하고 중간을 중매, 아래 부분을 서매(하매)라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곳에는 새롭게 지어진 한옥이 있는데 관심이 있다면 이곳에 살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선조 때 가선대부 공조참의를 지낸 석담 이윤우가 광해군 시절에 벼슬길에 나가지 않겠다고 광해(14년) 1622년에 향리로 돌아와 1623년에 지은 감호당에서 후학을 지도하던 강학지소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듯이 이곳에서 사람이 모여 살면서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냈습니다. 

골목을 탐방하듯이 이곳 저곳을 둘러봅니다. 
매원마을에 사송헌은 대사헌을 지낸 이원록의 생전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제실인데 6·25전까지 이곳을 매원 초등학교 임시 학교로 사용한 건물이라고 합니다. 


매원마을에는 용산제, 귀후제, 관수제, 아산제, 이석고택 등 많은 제실과 고택이 남아 있는데 매원마을은 매화의 꽃잎처럼 뒤로는 용두봉, 동쪽은 장원봉, 서쪽은 자고산과 산두봉, 남쪽은 금무산과 안산이 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칠곡 중방댁을 보니 비록 저의 고향은 아니지만 고택과 지형이 마치 고향처럼 느껴지게 만들어 줍니다. 



“가을 바람에 홀로 시를 읊으니/세상에 내 마음 아는 이 없네/창밖에는 밤이 깊도록 비가 내리고/등 앞에 앉은 이내 마음은 만리고향으로 달리네.” - 최치원

 

이제 가을도 모두 지나가고 겨울만이 남아서 2021년을 마무리하겠네요.  

뭐 시간이 어떻게가든간에 사람은 왔다가는 존재에 불과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고향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어가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때에 오래된 것의 가치를 사람들이 찾아가는 것이 더 필요한 시기가 지금이 아닐까요. 매원마을은 미래마을의 전통을 전수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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