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에서 백제라고 하면 공주와 부여를 생각하는데요. 역사적인 의미를 담은 곳을 찾아다니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으며 기록으로 남겨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예산에 산성이 있는지 몰랐는데 지역분들의 말을 들어보니 예산산성도 있었다고 해서 찾아가보았습니다.
예산은 백제 때 오산현(烏山縣)이라 했는데, 삼국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에 고산현(孤山縣)으로 개칭하여 임성군(任城郡)의 영현으로 삼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예산지역의 대흥은 백제 때 임존성(任存城) 혹은 금주(今州)라 했고, 경덕왕 때 임성군으로 고쳤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예산읍 산성리의 예산산성(禮山山城, 충청남도 기념물 제30호), 덕산면과 삽교읍에 걸쳐 있는 수암산성(秀巖山城), 삽교읍의 상성리 산성(上城里山城), 봉산면 당곡리의 천태산성(天台山城)·시동리 산성(侍洞里山城), 고덕면 대천리의 금후산성(金後山城) 등이 남아 있습니다. 강변의 공원을 지나가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예산산성으로 가볼 수 있습니다.
덕산은 백제 때 마시산군(馬尸山郡)이라 했으며, 경덕왕 때 이산군(伊山郡)으로 고치고 웅주(熊州)에 예속시킨 곳이라고 합니다.
이곳에 오니 예산산성에 관련된 내용을 접해볼 수 있네요. 예산 지명 탄생 1천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도기념물 제30호인 예산 산성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예산하면 사과밭이 유명한데요. 예산산성의 주변으로도 이렇게 사과밭이 있습니다. 예산산성에는 현재까지 대형 석벽 건물지와 목곽저수조, 초석 건물지가 각각 1기, 저장 구덩이 43기, 구덩이 4기, 고려 시대 저장 구덩이 2기, 아궁이 1기 등 53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고 합니다.
예산 산성은 백제 시대 지방성의 행정 중심지였던 주요 산성으로, 거점 기능을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외부에서 보니 예산산성의 둘레는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공주·부여 등 왕도에 위치한 산성을 제외하고 백제 시대 지방 산성에서 석벽 건물지가 확인된 곳이 바로 예산산성입니다. 발굴된 내부 건물 구조는 정면 13칸, 측면 4칸으로 추정되며 군 막사나 창고 건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적심토 조성 방식은 공산성 등 백제 왕성(王城)과 도성(都城)에서만 확인된 것으로서, 예산 산성 건물지는 백제 시대 건물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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