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통영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곳은 1943년 통영군청으로 건립되었고 1995년까지 사용되었으며 통영시청의 별관으로 2002년까지 사용되었다. 건립 당시의 외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근대에 지어진 건축물의 특징을 고스란히 모두 가지고 있는 곳은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는 곳입니다.
손으로 직접 제도판에서 건축도면을 그리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에는 관련분야로 계속 일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는데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됬네요. 건축도면은 지금이야 모두 PC에서 작업하지만 기본은 같습니다.
조금 더 빠르고 편하게 모듈화 된 도면을 가져다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설계하기가 용이해졌습니다. 기능적으로 설계를 하는 일의 대가는 작지만 건축을 구현하는 대가는 지금도 가치가 높은 편입니다.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전국의 곳곳에는 근대건축물이 남아 있습니다. 1843년에 건립되어 1995년까지 오랜 시간 사용되었던 통영군청 건물 역시 그렇습니다. 근대건축물이 가진 특징을 살펴볼까요.
2002년까지 통영군이 충무시와 통합되면서 통영시로 승격되면서 시청의 별관으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박물관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데 코로나19에 기획전은 진행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형태의 건축물은 전형적인 서양식 건축물입니다.
정면에서 먼저 보이는 것은 벽으로 방어체계의 일부를 형성하는 흙으로 만든 둑을 뜻하는 라틴어 발룸(vallum)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이 건물은 현재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선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통영의 오래된 자산이기도 합니다.
건물의 파사드에서 핵심은 창문이기도 합니다. 건물에서 창문은 빛과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는 통로로 건물의 눈이 되어주는 건축요소이기도 합니다. 어떤 다른 건축 요소보다도 더 건물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건축물은 창문이 균등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직사각형의 개구부는 창틀과 창과 배열로 이루어져 있는데 유럽처럼 정교하게 잘 다듬은 소용돌이무늬 장식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전형적인 관청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건물이기도 합니다.
아파트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요즘 벽돌로 건물을 짓는 일은 단독주택 외에는 많지가 않습니다. 근대주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근대건축물의 벽돌은 오래된 건축을 표현하는 것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르 코르뷔제의 자율 주택이 완공되고 나서 실용적인 근대적인 재료로 인식되었습니다. 벽돌식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건물은 쉽게 만들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외관의 특징은 명확합니다.
지금은 집을 짓기도 쉽고 매우 빠르기도 합니다. 옛날의 고택은 짓는데 10년이 넘는 경우도 허다했는데 그 차이는 바로 모듈화였습니다. 근대건축물의 경우 대부분 모듈화 된 표준 크기에 따라 배치되어 만들었던 것입니다. 전국 어디서 짓더라도 같은 기준으로 만들어서 빠르게 만들수가 있었죠.
박물관답게 앞에는 통영을 상징하는 옛 석상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돌로 다듬어 사람 모양의 형상물(形象物)을 마을이나 바다가 보이는 곳 또는 고개 등지에 세웠던 일종의 수호신의 역할도 해주었다고 합니다.
통영 박물관에서는 작년에 코로나 19로 인해 기획전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통영을 갈 때 기획전시전을 보고 가곤 했는데 요즘에는 그런 기회도 많이 없습니다. 지금도 개방은 되어 있지만 상설전시로 통영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만 있습니다.
통영 박물관 (구 통영군청)과 같은 건축물의 평면은 단순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르 코르뷔제는 평면이라는 것은 꾸밈없는 추상이 건축을 창조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이었다고 설명하였다고 합니다.
근대건축물을 돌아보고 계단을 내려와서 통영의 거리를 돌아보았습니다. 통영 박물관은 주 출입구를 중심으로 전체적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는데 건립 당시의 목적인 공공건물과 같은 건축물들을 자연환경이나 불확정적인 도시조직으로부터 두드러져 보이게 함으로써 그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아주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아마도 이 앞에는 바다가 훤히 보이는 풍광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의 모습이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통영에서 걸어볼만한 곳은 이곳을 중심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과거에 통영에서는 ‘동피랑에 산다’는 말은 금기어였다고 합니다. 시적인 어감을 주는 이름과는 달리 동피랑이라는 단어는 엄혹한 가난의 상징과도 같았기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통영의 근대건축문화와 더불어 통영분들의 오래된 삶의 터전을 탐방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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