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곳 봄도 느끼고 걷고, 시인과 역사를 만나는 길

가까운 곳에서 봄도 느끼고 걸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마음이 편할 수 밖에 없는데요. 바로 대덕구 송촌동에 그렇게 걸어볼 수 있는 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많은 꽃은 철쭉입니다. 가까운 곳을 거닐어 보이니 철쭉이 눈에 뜨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철쭉은 산철쭉, 단풍 철쭉, 자산홍, 영산홍등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철쭉으로 뒤덮인 곳을 보면 마치 물감을 뿌려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 길에서 만나보았던 가장 친숙한 시는 계족산자락의 비래암에 올랐다는 시였습니다.

김호연재 - 비래암에 올라

비 갠 뒤 바람이 가벼우니 날씨 산뜻하고
비래암 돌에 부딪치는 물소리 정신 맑혀주네
지팡이 들고 느리게 계족의 산길 걷노라니
바위 위 쇠잔한 꽃 홀로 봄 빛 감았고야


이곳을 터전으로 살았던 김호연재의 시는 지금 이 시기에 딱 맞는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계족산의 산길이 아니라 도심 속의 숲길은 그녀의 시처럼 꽃 홀로 봄 빛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이른 봄에 피는 진달래는 개화 기간이 비교적 짧아 화려한 모습을 충분히 보기 어렵지만 철쭉은 4월부터 5월까지 개화기가 길어 핑크빛 꽃망울을 오랫동안 즐길 수 있습니다. 가지 끝에 꽃이 먼저 핀 후 잎이 나면 진달래, 꽃과 잎이 함께 날 경우 철쭉으로 보면 대부분 맞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관직을 가졌던 적지 않은 유학자들이 한양이 아닌 자신이 태어났던 지역으로 내려와서 향촌활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동춘당 송준길같이 보통 학문이 높은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없기에 그들의 활동은 향촌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회덕에도 송준길이 내려와서 활동하였는데 그가 67세의 나이로 별세하자 유생들을 비롯한 관아와 지역의 백성들이 서로 조문하였다고 합니다. 

사람의 일생과 시나 그 당시에 일어났던 일들을 살펴보며 가볍게 산책해봅니다.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보편적이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로 "모든 것에 공통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이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만 별 것이 아닐 수도 있고 올해에도 색다르다고 느낄 수가 있습니다. 

보편적인 생각이나 관점 혹은 인생에 대한 관점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것 같지만 모두에게나 다르기도 합니다. 보편적이라는 것은 일상의 변화나 평범함에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거나 대상을 보는 것입니다. 

곧게 뻗어 올라가는 소나무도 있지만 많은 소나무들이 제각기 방향을 틀어서 위로 뻗어 올라갑니다. 이곳에서 걸으면 오얏꽃이 등장하는 시도 볼 수 있습니다. 

봄을 탄식하며 - 김호연재

복숭아꽃 어지러이 흩날리고 오얏꽃 향기로운데
나비는 분분히 작은 집 둘러싸며 도네
적막한 공산에 봄은 절로 흘러가고
범천의 저녁나절 이별의 시름 길도다. 

대한제국 때 만들어진 왕실 연회용 백자에 그려진 오얏꽃 문양은 꽃잎 5개에 꽃술이 달린 오얏꽃, 즉 자두꽃을 간략하게 도안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한자로 자두를 뜻하는 이(李)를 써서 이화문(李花文)으로도 부릅니다.  봄에 피는 꽃이지만 조선왕실의 오얏꽃은 가을 분위기 느낌입니다. 

그녀가 적었던 오얏꽃은 자두나무 꽃으로 오얏꽃은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꽃문양이라고 합니다. 비교적 늦은 시기인 대한제국이 들어서면서 오얏꽃이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문장(紋章)으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짦은길이지만 걷다보니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오게되었습니다. 오늘 가볍게 걸어본 시간이네요. 

 

실내에서 운동하기도 쉽지 않은 요즘 가볍게 걸어보고 봄을 그린 시도 읽어보고 이렇게 하루의 간단한 산책을 마무리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