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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나기

공주의 충청도포정사와 마을의 봉황큰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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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를 여행하면서 공주 한옥마을에 충청도포정사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오래간만에 가보니 충청도포정사가 옮겨져 있었습니다. 포정사는 조선시대에 충청도 4목 중의 하나인 공주목에 세워졌던 충청감영의 선화당(宣化堂) 앞에 세워졌던 정문이고, 또 그 옆에 이 포정사로 들어가는 솟을삼문으로 된 삼문이 교동에 있었으나 현위치로 옮겨져 복원된 것이라고 합니다. 

 

공주는 충청도를 관리하던 곳이었기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이야 상수도가 잘 발달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이런 우물에서 식수를 취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주의 봉황큰샘도 그런 곳입니다. 

 

이곳은 전에 왔을 때는 본 적이 없었는데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새롭게 각색되어 만들어져 있더라구요. 

봉황큰샘은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제245호로 지정되었으며 원형우물로 보존되어 왔으며 1980년대 초반까지 주민들이 사용하였고 현재도 수량이 풍푸한 큰샘은 궁정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대통사의 전용 우물로 추측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어릴때 우물에서 물을 길어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이야 우물이 식수원으로 사용되는 곳이 많지는 않지만 오랜시간 전에는 매우 중요한 식수원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마을분들의 이야기와 옛날 사람들의 흔적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어서 옛날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공주는 오랜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지닌 교육도시로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중추적 행정의 거점이었던 곳입니다. 

공주는 많은 인물이 나왔던 곳이기도 합니다. 조선 후기 공주목은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김장생(金長生)·김집(金集)·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이유태(李惟泰)·권시(權諰)·윤증(尹拯)·유계(兪棨) 등 조선 후기의 학자들이 나온 고장입니다. 

 

봉황큰샘을 보고 나서 내려오면 포정사를 볼 수 있습니다. 포정사의 건축양식은 전형적인 무출목(無出目) 2익공계통이며, 창방 위에는 운공[雲工 : 초새김한 짧은 부재]이 끼워진 장화반[長花盤 : 초새김한 긴 받침]을 중앙칸에 3구를, 나머지 주간(柱間)에는 3구씩을 각각 배치하여 건물의 정면을 화려하게 꾸민 것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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