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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나기

고려 이미숭장군의 이야기가 있는 중화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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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을 대표하는 여행지중에 한 곳은 바로 자연휴양림이 있는 미숭산입니다. 그 미숭산에는 본관은 여주(驪州). 호는 반곡(盤谷). 이규보(李奎報)의 4세손으로 할아버지는 동북면선위사(東北面宣衛使)·예부상서(禮部尙書)·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고령군(高靈君)에 봉해진 이헌(李憲)이고, 아버지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안북장군(安北將軍) 이언(李彦)의 아들인 이미숭장군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화1리를 감싸고 있는 이 주변에 자리한 산은 화산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고려 공양왕 때 이이뭇ㅇ장군이 봄이면 진달래 꽃이 온산을 뒤덮어서 불렀다고 하는데요. 이전에도 대가야가 자리했을 때 왕과 궁녀가 이곳에서 머물면서 꽃에 견주어 화산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중화1리의 마을을 찾아서 위로 올라가 보면 보호수및 소소하지만 다양한 마을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곡식들이 무르익는 계절인 가을이 오기전에 많은 손이 가는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이미숭(李美崇)[1346~?]은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으로 경학(經學)을 전수받았다고 합니다. 무반(武班)으로 입신하여 관원으로 출세한 뒤에도 늘 병서(兵書)를 읽고 궁마(弓馬)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계속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작은암자와 중화1리의 또 다른 마을인 버섯마을과 면유당등의 작은 고택등도 있습니다. 

짙은 녹음이 고령의 온 산야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에서 에너지가 샘솟는 느낌이 듭니다. 

이 작은 정자처럼 보이는 곳은 바로 일제 강점기에 서원인 명곡정입니다. 구목재는 여주이씨 문중에서 청소년들의 학문을 수학하기 위하여 1922년 건립한 건물이며, 경내에 충의부도사(忠義府都事) 이재윤(李載胤)의 유허비가 있다고 합니다. 1957년에 명곡정(明谷亭)으로 개칭하였다고 합니다.

고령에는 다양한 성씨가 모여서 사는 집성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마다 이런 비가 세워져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건물구조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전면으로 길게 4칸은 마루를 놓고 후면으로 길게 4칸은 온돌방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문간채는 솟을지붕의 3칸이며, 골기와지붕 1칸은 대문으로 슬레이트 지붕 측면 2칸은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봄꽃의 아름다운 색감이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고령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이곳에 자리한 산을 화산이라고 불렀던 이미숭장군은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최영을 몰아내고 실권을 장악한 뒤 1392년 왕위에 오르자 이에 항거하여 진서장군 최신(崔信)과 더불어 군사를 일으킨 것에 반대해 군사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여러곳에서 전투를 하다가 전세가 불리하자 남하하여 경상도 금릉과 성산에서도 격전을 치렀다. 패퇴를 거듭한 끝에 고령과 합천의 접경 지역인 상원산(上元山)에 들어가, 최신 장군 등과 함께 성을 쌓고 군사를 조련하여 후일을 도모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절벽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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