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에서 태어나 지조가 굳었던 인물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만해 한용운 선생이 대표적인 인물인데 김복한 선생이라는 분도 있더라구요.
1892년에 별시 문과에 급제해서 교리, 양사, 사서, 통정, 대사성, 형조참의를 거쳐 2년 만에 승지에까지 제수된 사람입니다.
추양사가 바로 김복한 선생을 모신 곳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영향이 미친 갑오개혁이 시작되자 조정에서 나와 충남 홍주로 내려왔다가 을미 홍주의병과 관련되어 체포된 김복한은 1896년 2월 고등재판소 재판장 이범진에게 문초를 받기도 했습니다.
찾아보면 충남 홍성에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인물이 정말 많은 것 같습니다.
이곳에 추양사가 건립된 시기는 1975년으로 김복한 선생을 존경하던 사람들이 발의하여 당시 홍성군수 조영호가 300만원을 들여 추양사를 준공했고 이어 부임한 이관현 홍성군수가 군비 500만 원을 투입해 저와사업에 착수하여 논과 밭, 산을 매수해 사역을 확대했다고 합니다.
사당이라서 그런지 빨간색의 홍살문이 세워져 있네요.
이 우물은 언제 파놓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오래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아요.
그리고 지금은 이곳에서 물을 퍼 올리는 것 같지도 않은 것 같네요.
을미의병, 홍주의 진등의 일에 연결되었던 김복한은 이후 1919년에 삼일 운동이 일어났을때 그는 파리평화회의에 보내는 독립청원서를 작성·서명하는데 참여했는데, 서명자 137명이 모두 일경에 체포되고 그는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가 순국했다고 합니다.
김복한 선생은 1963년에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습니다.
추양사 옆에는 김복한 선생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을때는 참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저세상에 가서는 양지바르고 위치로 보면 참 좋은 곳에 모셔진 것 같습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었을때 이완용 등 을사오적의 처단을 상소하고 의병을 일으켰다가 체포되었던 김복한 선생은 당시 일본군에게 모진 고민을 당해 불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을사오적과 김복한 선생은 같은 하늘을 보고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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