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선생은 경주최씨의 시조로 869년(경문왕9) 13세에 당나라에 유학해서 874년에 급제하여 황소의 난 때 고변의 종사관으로 토황소격문을 초하여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친 사람입니다. 그리고 신라에 와서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관직을 내려놓고 각지를 유랑하다가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홍성군에 자리한 최치원의 유적지에는 잘 관리된 공중화장실을 비롯하여 주차공간도 갖추고 있습니다.
서기 868년 신라 현강왕때 12살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 가는 아들에게 10년 안에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니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라는 말에 '인백기천'이라고 하며 떠났다고 합니다.
신라 말기에 894년 시무책 10여 조를 진성여왕에게 상소하여 문란한 국정을 통탄하고 바꿀 것을 요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을 버리고 난세를 비관하며 각지를 유랑하면서 충청남도 홍성을 비롯하여 보령에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세상의 벼슬을 마다하고 조용히 여생을 지내고자 한 최치원 선생의 심경을 표현하고 있는 글부터 주옥같은 글들이 이곳에 남겨져 있습니다.
최치원의 아버지는 부인에게 만약 부인이 사라지면 명주실을 따라 구하러 갈 것이니 향을 피우면 자신이 왔다는 표시라 여기라고 말했었다고 합니다.
살아서는 바른 사회를 위해 노력하며 전국에 흔적을 남긴 최치원은 죽어서는 신선이 되었다고 하는 최치원의 이야기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홍성군의 최치원의 유적지는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글을 읽고 가을을 만끽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백기천'이다. 다른 사람이 백을 하면 나는 천을 하겠다는 표현입니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 신선처럼 살다가 홀연히 사라졌다는 가야산 홍류동과 해인사 일대에 농산정, 학사당, 학사대, 고운암, 가야서당 등 많은 유적지가 있으며 홍류동 계곡의 19명소 중 낙화담 등 13명소는 선생이 직접이름을 붙이고 바위에 이름을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유학자입니다.
셈하기도 어려운 긴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최치원이 머물렀던 풍경을 거닐어보며 장소가 주는 의미보다 풍기는 정취, 시선을 잡아당기는 인상에 마음을 내준다는 것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네요.
시간을 한 다리 건너뛰고도 여전히 가슴 벅찬 풍경에 함께 머무를 수 있어 애틋하기도 하지만 운명의 세찬 바람에 날려 외로운 구름 하나로 남아 한 시대를 표류한 최치원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어서 반가운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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