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2023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의미있는 곳을 찾아다니려고 하고 있는데요. 홍성에 자리한 독립운동가였으며 청산리전투를 승전으로 이끌었던 김좌진장군의 생가를 찾아가보았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일본은 이 나라의 외교권을 박탈했을 때 분노하며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김규식, 나중소, 이범석 등과 함께 군대를 개편하여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를 조직해 총사령관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겨울이 찾아오면서 조용한 곳이지만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해 이땅에 민족의 명맥을 유지했다는 의미가 있는 공간입니다. 청산리전투로 알려진 김좌진장군은 일본군에게 눈에 가시였습니다.
조용히 안쪽으로 걸어서 돌아봅니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이어서 그런지 차가운 온도가 내려깔리고 있습니다. 김좌진 장군이 자신의 재산을 다 정리하고 넘어가 북만주에 터를 잡고 김좌진 장군은 독립군을 양성하였는데 이에 일본군은 독립군 토벌작전계획을 세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있는 생가는 고택의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순국선열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6월 6일은 현충일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위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중 순국선열은 일제의 국권 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 침탈을 반대하거나 또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항거하다가 그 항거로 인해 순국한 자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김좌진 장군은 1889년 11월 24일(음력) 홍주목 고남면 행촌리(현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에서 태어났으며 15살에 자신 소유의 노비를 해방시키고, 소작농에게 무상으로 제공했다고 합니다.
한반도가 일본에 강점이 되었을 때 벌어졌던 제1차 세계대전은 정부의 성장과 전통적인 사회 구조의 소멸을 촉진시켰는데요. 안타깝게도 청산리대첩에서 승리하기는 했으나 우리는 여전히 일제 강점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생각하고 돌아보는 것은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고택을 돌아보니 2022년의 한 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듭니다.
청산리전투의 상대국이었던 일본의 야욕은 세계를 변화시킨 항공기 50기에도 선정된 제로 기개 발로 이어지고 하와이섬의 진주만 해군기지를 기습 폭격했지만 결국 패망하게 됩니다.
이제 대부분의 낙엽이 떨어지고 나니 푸르른 상록수가 눈에 띄이기 시작합니다. 봄, 여름, 가을에는 상록수가 잘 눈에 띄이지 않았는데요. 시간이 지나니 이렇게 상록수가 더 푸르게 보입니다.
이제 이곳 김좌진생가를 뒤로 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봅니다. 독립군을 공격하기 위해 온 일본군을 백운평 숲 속에서 매복하여 전투에서 승리하고 이동해 천수평(泉水坪)에 주둔한 일본군에 승리한 이후에 홍범도 부대와 함께 연합전선을 편 것으로, ‘청산리대첩’이라는 이름으로 만 4일 동안 10여 차례의 접전을 벌인 끝에 승리를 거둔 것이 청산리 대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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