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떠나기

정미면의 4.4 만세운동 기념탑과 가볍게 돌아본 뱃터공원

728x90
반응형

전국적으로 일본에 저항하며 독립운동이 벌어지고 있을때 충청남도의 곳곳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당진시 역시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있었는데요. 그중에 정미면에서 있었던 4.4 만세운동의 현장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당진시 정미면에서는 천의장터가 열렸었다고 합니다. 천의장터는 1919년 4월 4일 대호지면사무소를 시작으로 태극기를 앞세워서 온 주민들과 천의장을 이용하는 주민 1,000명이 합세해서 독립만세운동을 외쳤다고 하는데요. 바로 이곳이 그 현장입니다.  

구한말부터 매월 4일과 9일 형성되었던 천의장터는 1970년대 후반부터 쇠퇴해서 1980년부터는 그 기능을 잃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기초생활거점조성사업을 통해 지금처럼 잘 정비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곳에는 그날을 기념하는 기념비와 태극기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만들어진지가 얼마 안되었는지 새롭게 정비된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곳에 자리한 태극기는 남상락자수태극기라고 합니다. 태극기는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는데요. 지금의 태극기는 그 시간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1919년은 이 나라에 있어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한 해였습니다. 흔히 알려진 삼일운동의 관점을 넘어서 민중이 주인이 될 수 있는 기점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만세운동을 하다가 현장에서 학살된 사람이 3명, 옥중에서 고문치사를 당한 사람이 3명등 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의해 희생이 되었습니다. 4월 5일 출돌한 일본 군경과 충돌하여 사상자가 5명 발생하고 200명이 넘게 구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날을 기억하는 기념탑을 통해 역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독립운동의 의미는 오늘날 더 많은 사람이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만세운동 기념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면 잘 정비된 천변이 있고 이곳을 거니는 것도 좋고 옆에 있는 뱃터공원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천의 시장은 원래 구장터라 부르는 곳이 있었는데 너무 협소해서 1918년 거석골이라고 부르는 지금의 장터로 옮겼다고 합니다. 이곳이 시장으로 형성된 그 시절에는 고대, 운산, 음암 상인등의 농산물ㅇ이며 여러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사고파는 인근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장터였다고 합니다. 

이곳 배터 공원은 1970년대부터 쓰레기 매립장으로 활용하던 국유지가 위생매립장 준공으로 활용이 중단되어 흉물로 방치되던 것을 천의리 주민의 요청에 따라 과거 바닷물이 들어올 당시 배터였다는 점에 착안하여서 2009년과 2010년에 조경으로 공원으로 조성을 했다고 합니다.  

이곳까지 조운선이 들어왔다고 하니 옛 모습이 어떠했을지 상상해봅니다. 김장철에서는 전의에서 숭산사거리 다리목까지 새우젓 배, 조기 배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시간이 지나고 옛 모습은 사라졌지만 당진과 서산의 경계 지점으로 큰 변화는 아니어도 청정의 자연환경을 지켜가며 옛날의 기억을 되살리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