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당진이라는 곳에 한음 선생의 영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요. 지난번에 우연하게 당진의 한적한 국도를 지나가다가 한음 선생 영정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한 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 어디를 가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역사적인 인물을 찾아가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오성과 한음이라는 이야기가 담긴 책을 언제 읽었는지 가물가물할 정도지만 기억하기로는 초등학교를 들어간 직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요즘에는 흐리다가 맑은 날이 자주 생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오성과 한음의 일화는 임진왜란으로 혼란해진 사회에 지도층으로서의 양반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곳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한음 선생 영정이 있는 공간이 나온다.
한음선생의 영정이 자리한 곳을 찾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곳이 한음 선성 영정이 자리한 곳입니다. 옆에는 향나무가 심어져 있어서 남다른 멋스러움이 있습니다.
오성과 한음의 일화에서 가장 재미나게 본 것은 서당 일화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시대를 살았는지는 몰랐지만 두 명의 케미와 함께 현명했던 대처가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음 이덕형(1561~1613)은 오성 이항복(1556~1618)과 함께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명신으로 서울 남부 성명방(지금의 을지로 일대)에서 태어난 이덕형은 19세에 별시 문과에 급제해 관직에 올라 이조참판 겸 대제학이었던 31세 임진왜란이 발발, 명군과 함께 평양을 수복하는데 능력을 보였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한음 선생 이덕형의 영정이 이곳에 있는 것은 한음 이덕형의 후손 중 일부가 당진으로 오며 영정을 필사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쉽게도1998년 문중에서 보관 중 종손이 사망한 이후 그 행방이 묘연해졌지만 영당은 남아 있습니다.
서울의 한음 이덕형이 태어난 곳은 가본 적이 있습니다. 건물 앞에 표시만 되어 있어서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것만 알 수 있었습니다.
임진왜란때 큰 활약을 했던 한음 이덕형은 명나라 제독 유정(劉綎)과 함께 순천에 이르러 통제사 이순신(李舜臣)과 함께 적장 고니시의 군사를 대파하였다고 합니다. 1601년 행판중추부사(行判中樞府事)로 경상·전라·충청·강원 4도체찰사를 겸해, 전란 뒤의 민심 수습과 군대 정비에 노력하였습니다.
한음 선생의 영당(영정을 모신 사당)이 당진시 송악읍 금곡길 134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안쪽에 있으니 잘 찾아보셔야 합니다. 현재 한음 선생 영정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98호로 지정돼 있다고 합니다. 글씨에 뛰어났던 한음 이덕형은 사후에 포천의 용연서원(龍淵書院), 문경의 근암서원(近巖書院)에 배향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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