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떠나기

대전의 중심이었던 회덕의 유래비와 불망비 이야기

728x90
반응형

요즘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많지가 않은데요. 그래서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날카로워졌다고 합니다. 코로나 19 시대에 느끼는 감정은 홀로 지내면서 공격성이 높아진 것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낯선 사람과 거리를 두고 잘 알고 지내던 지인과의 만남도 간격이 길어진 요즘입니다. 

 

오가는 차량외에는 이곳은 조용하게 시간이 지나가는 곳입니다. 저도 자주 지나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바깥 외출도 줄이고 있기 때문에 거리를 나가도 사람들이 많지가 않습니다. 특히 9시에 영업이 제한이 되고 난 후 그 시간대에는 사람들이 거의 안 보입니다. 지금은 대전에서 가장 한적한 곳 중 하나지만  대덕구 읍내동은 당시 회덕현의 행정중심지로 동쪽으로는 계족산, 서쪽은 갑천, 남쪽은 법동과 대화동, 북쪽은 신대동과 연축동과 인접해있는 중심지가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회덕현 관내의 지방행정을 수행하던 회덕 관아터는 현재 회덕동주민자치센터 옆에 일부 터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회덕유래비가 세워진 이곳에는 회덕현 관아를 비롯하여 동헌, 객사, 침벽당, 응향정, 창고, 무기 고등 79칸에 이르는 규모의 관아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건물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없어지지 않았다면 전주에 못지않은 한옥마을 거리도 가능했을 듯 합니다. 

회덕동 행정복지센터에는 주민에 대한 다양한 지원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으니 개인방역을 하시고 찾아가시면 됩니다. 

골목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잊지 말아야 된다는 의미의 불망비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덕을 품었다는 회덕이라는 의미의 길 입구에는 홍살문을 지나쳐서 안쪽으로 걸어서 들어오면 됩니다. 

주변에는 오래된 집들이 있는데 조금 더 걸어서 들어오면 전각이 보입니다. 전각 안에 있는 대전시 문화재자료 제27홀 어사 홍원모 영세불망비각은 홍원모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홍원모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829년 순조 때 암행어사로 바로 이곳 회덕 지방의 민정을 살피던 중에 기아와 질병에 허덕이던 백성을 구제하고 세금을 감면해 주었다고 합니다. 

전각안에 세워진 문화재자료 제27호 어사홍원모형세불망비가 보입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회덕의 옛 흔적을 잘 복원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전각은 크지는 않지만 잘 살펴보면 오래된 조선시대의 양식을 간직한 건물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애민 선정비나 영세불망비 모두 송덕비(頌德碑)의 일종입니다. 송덕비는 선정을 베푼 관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후임자나 백성들의 추천을 통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임금의 허락을 받아 세웠습니다. 그래서 관리들이 송덕비를 세우기 위해 백성들을 압박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반면 불망비는 백성들이 직접 세운 것으로 조금 더 애민적입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