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떠나기

계족산 자락을 거닐며 살펴보는 오래된 이야기와 흔적

728x90
반응형

저도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언제올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2021년도 쉽게 실내에서 운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네요. 그 대안으로 주변에 있는 산이나 산책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런때에 움직이지 않는다면 건강이 나빠질 수가 있으니까요. 

계족산이 없었다면 코로나19에 어디를 갈 수 있었을지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가까운 곳에서 자연과 가장 밀접하게 만날 수 있는 대전의 명산입니다. 

숲 속의 수목은 상쾌한 향기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테르펜류라는 탄화수소 화합물에 의한 것으로 인간의 정신, 특히 자율신경에 작용하여 정신의 안정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빠르게 걸을필요는 없으니까요. 천천히 주변풍광도 보면서 아래로 내려가봅니다. 돌아다니다 보니 바다도 좋고 강도 좋고 호수도 좋지만 산이 좋다는 것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이어지는 계족산 황톳길은 이곳부터 시작할 수 있는데 걷고 싶은 길 12선에 선정된 곳이라고 합니다.  

겨울다운 풍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겨울은 겨울다울 때 가장 좋듯이 이제 봄을 기다리면 됩니다. 

 

이곳에 입구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멋드러진 느티나무에 잎이 자라기 시작할 때 봄이 시작되겠죠. 오래된 고목만큼 친근한 느낌이 드는 존재도 없습니다. 

 

대전에는 산성이 수십 개가 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기도 했지만 고대국가의 주요 도시가 자리하지 않았기에 옛날의 흔적은 많지는 않은 편이지만 대전 대덕구의 비래동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마을분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고인돌을 보아왔겠지만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이나 심지어 대덕구에 사는 사람들도 비래동에 고인돌이 있는 것을 모른다고 합니다.  집성촌을 이룬 고성 이씨(固城 李氏)는 경상남도 고성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고성이씨가 많이 살고 있는지 관련 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냥 돌처럼 보이지만 옛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의 기록입니다. 대전 대덕구 비래동에는 두 개의 고인돌이 남아 있는데 고인돌 1호는 780cm * 440cm 정도의 범위에 잡석 및 황갈색 점토를 약 0.5m ~1m가량 높이로 쌓아 올린 뒤 매장 주체부인 석곽이 축조되어 있습니다.  

1호의 뒤에는 2호 고인돌이 있는데 비래동 고인돌에서 나온 비파형 동검은 금강 유역에서는 최초의 예로, 함께 출토된 석촉 등의 형식으로 보아 시기는 약 B.C 7세기 ~ B.C 6세기경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고인돌 아래에는 부족장의 권력을 상징하는 검이나 거울, 방울 등의 청동기들을 넣어둔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한 이곳은 밭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주변에 오래되어보이는 집성촌의 흔적들도 보이네요. 

 땅 위에 기둥 역할을 하는 고인돌을 세운 후 커다란 돌을 올려놓은 것이 탁자식이고 땅 속에 사각형으로 돌무덤을 만들고 그 위에 작은 잡석 등을 깔고 커다란 돌을 올려놓은 것이 바둑판식입니다. 비래동 고인돌은 바둑판식입니다.  

비래동 고인돌에서 발굴된 유물로는 제1호 지석묘에서 비파형 동검 1점, 삼각만입화살촉 5점, 붉은 간 토기 1점, 제2호 지석묘에서는 붉은 간 토기 3점, 제3호 지석묘에서 붉은 간 토기 1점, 관옥 1점이 출토되었습니다. 요즘은 우리고장의 문화와 흔적을 알기에 좋은 때입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