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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나기

천고마비의 계절에 찾아가본 독립운동 100주년 김좌진장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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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제강점기당시의 전투를 영화로 제작해서 그런지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봉오동 일대에서 독립군의 무장항쟁이 활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월강추격대를 필두로 독립군 토벌 작전을 시작하고, 독립군은 불리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봉오동 지형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죠. 

일본군과 전투를 이야기하면 김좌진장군을 빼고 이야기가 힘들죠. 보령에 가면 김좌진 장군묘가 있어서 가을을 맞아 이곳까지 발길을 해보았습니다.  

날이 너무 화창한 날이어서 그런지 김좌진장군의 묘도 더 색깔이 진하게 느껴지는 날이었습니다.  어제 농사 짓던 인물이 오늘 독립군이 되어 이름 모를 영웅으로 살아간 시간과 그들의 승리에 관한 이야기가 이곳에 있습니다. 기억되지 못 했고, 한 줄의 기록조차 남겨지지 않았던 이들이 뜨겁게 저항해 쟁취한 승리가 바로 독립운동이었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일본은 이 나라의 외교권을 박탈했을 때 분노하며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김규식, 나중소, 이범석 등과 함께 군대를 개편하여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를 조직해 총사령관에 취임하게 된 것입니다.  

묘소로 들어가기 위해서 문으로 들어가 봅니다.  상하이에 독립운동가들이 둥지를 틀고 신아동제사의 지사들은 얼마 뒤 신한혁명당을 조직하고 고종 황제를 데려워 망명정부를 수립하고자 국내에 밀사를 파견했지만 이 일은 좌절되었다고 합니다. 

김좌진 장군의 묘가 있는 곳에는 아직 여름의 기운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구석구석에 가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김좌진 장군 사당과 외삼문은 항상 열려 있는 곳입니다. 

당시 만주에는 밟고 살 땅, 농사 지을 땅, 죽어서 묻힐 땅을 찾겠다고 몰려든 전국의 이름 모를 독립군들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영웅들의 이야기는 많았지만 이름 없는 영웅들을 들여다본 이야기는 많지 않았던 것입니다.  

잘 알려진 김좌진 장군도 있지만 그와 함께 활동했던 독립군들의 이야기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립군을 공격하기 위해 온 일본군을 백운평 숲 속에서 매복하여 전투에서 승리하고 이동해 천수평(泉水坪)에 주둔한 일본군과 김좌진 장군은 맞붙게 됩니다. 이때에도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랑촌 전방에서는 독립군이 일본군 3개 여단에게 포위되어 공격을 받고 있다가 홍범도 부대의 지원에 힘입어 공동으로 일본군을 격파하게 됩니다.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아 찾아와본 김좌진장군의 묘는 조금은 다른 느낌을 받게 만듭니다. 

 

한국광복군은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하고 일체를 희생하였으며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절실히 추행하며 임시정부를 적극 옹호하고 법령을 절대 준수하겠다는 서약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좌진 장군은 1929년 여름에 자치조직인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를 조직하여 주석에 취임했습니다. 그 이후 1930년 1월 24일 영안현(寧安縣) 산시역(山市驛)에 있는 자택 앞 정미소에서 공산주의자 박상실(朴尙實)에게 암살당하게 됩니다. 그 이후 1962년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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