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어사 하면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그들을 위해 탐관오리를 벌주고 했던 사람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도 비리나 억울한 것들이 있지만 주로 감사나 검찰에 의해서 밝혀지지만 조선시대에는 어떠했을까요. 물론 사간원등에서 관리의 비리나 문제를 밝히기도 했지만 지역별로 있는 관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쉽지가 않았죠.
어사 박문수의 묘로 가는 길은 은석산 임도로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는 길에는 어사 박문수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시대 전국의 팔도는 부, 목, 군, 현의 행정체계를 가지고 관리가 되었습니다. 부를 관리하는 관료는 수령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이 부윤(府尹)으로서 관찰사와 동격이며, 관찰사 소재지의 부윤은 대개 관찰사가 겸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 부의 바로 밑에 있는 것이 목으로 군읍(郡邑)의 이름이 주(州)로 된 곳 약 20개 처의 구획명을 목이라고 하였으며 그 장관을 사(使)라고 하였습니다. 주를 관리하는 관리를 목사라고 하였으며 그 밑에 군과 현이 있었습니다.
그런 조선의 행정체계를 관리하고 암행하여 적발했던 것이 암행어사의 일이었습니다.
언제쯤 나타날지 모르는 묘를 향해 계속 걸어서 올라가 봅니다.
은석산에는 안정복이 목천 현감으로 재직 시 기우제문을 지어 작성산에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했다고 하는 기우단이 남겨져 있습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현을 관리하는 관료가 현감입니다.
이곳이 박문수의 묘입니다.
조선왕조의 지방관은 외관(外官)이라 하여 그 수위를 차지하는 것은 도(道)의 관찰사였고, 그 밑에 수령(守令)인 부윤(府尹)·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목사(牧使)·도호부사(都護府使)·군수(郡守)·현령(縣令)·현감(縣監) 등이 있었습니다.
1691년에 태어나 1756년에 세상을 떠난 사람으로 문신이다. 예문관검열, 대사성, 충청도 암행어사, 예조참판, 호조참판, 병조판서, 함경도관찰사를 역임했으면 소론인물이었던 박문수는 탕평의 실을 강조했으며 군정(軍政)과 세정(稅政)에 밝았다고 합니다.
사실 박문수는 존경할만하고 중요 요직을 두루두루 겸한 사람입니다. 호남어사로 나갔을 때는 굶주린 백성의 구제에 힘도 기울였으며 함경도 진휼사로 임명되었을 때는 경상도 곡식 1만 섬을 가지고 굶주린 백성도 구제했습니다.
박문수가 어사일도 했지만 균역법 제정에 공을 세웠으며 고른 인재의 등용을 주장할 수 있었던 그런 자리에 있었습니다.어사 박문수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했던 행동들로 인해 백성들의 환호는 박문수를 향한 것 같지만 인재를 바로 썼던 영조를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박문수는 사후에 그 공을 인정받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헌(忠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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