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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나기

인문학의 향기를 맡아보는 보령 오천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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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강점하기 직전인 10년전에는 이미 조선의 왕실에는 어떠한 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시기에 고종황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요. 조선의 마지막시기에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료 향교를 만든 곳이 있습니다. 

 

오천향교를 찾아가는 길에서 보령의 바다도 만나보며 오래간만에 즐거운 휴식시간을 가져봅니다. 저 곳은 밀물이 되면 위로 바닷물이 차는 곳으로 지금은 보시다시피 바닷물이 위로 흘러서 차량의 통행이 안됩니다. 

흘러흘러 오다보니 보령의 오천향교가 자리한 곳까지 왔네요. 

근대/개항기인 1901년에 만들어진 오천향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마지막 향교입니다. 처음도 의미있지만 마지막이라는 것이 의미있게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오천향교는 1895년 오천의 충청수군절도사영이 폐영되고 1901년 오천군이 생기면서 고을에 향교를 건립하기 위해 유림과 군수가 힘을 합쳐 만든 것입니다. 

오천향교의 어떤 분을 모시기 위해 만든 곳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유교와 관련된 성현을 모신곳이기에 규모가 크지는 않는 곳입니다. 

오천향교는 향교길 45-26에 있습니다. 향교를 말할 때 인문학을 빼고 말할 수가 없죠. 인문학(人文學)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합니다.

인문학이 중요한 이유는 그 정신이 중요함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화 콘텐츠가 산업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현대사회에서는 그 영향력이 더욱 강화되어오고 있습니다. 이는 인문학이 문화 트렌드와 콘텐츠들을 더욱 잘 이해하고 재생산해내는 기초 해석 코드들을 제공해주기 때문 이라고 합니다. 

다른 향교에 비해서 규모도 작고 기본적인 관리만 이루어지고 있지만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더 계획적으로 세워서 진행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향교의 교육은 내가 누군지 아는데 적지 않은 비중을 두었다고 합니다.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는 자존감이 무엇인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심리적, 정신적 대안을 제시하면서 결국 내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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