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에서 외곽지역에 위치한 유구면쪽으로 가다보면 옛 사람들의 흔적이 있는데요. 바로 임진왜란때 조헌을 찾아간 만경 노씨 삼형제의 흔적입니다. 조헌을 따라간 이들은 혈전에 혈전을 거듭한 끝에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에서의 전투를 치루기 위해 내려왔다가 왜군과의 전투에서 모두 전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만경 노씨 삼형제라고해서 느낌상 꼭 노비같다는 생각이 들수도 있는데요. 삼형제는 모두 중봉 조헌의 문인으로 노응환 (1555~1592), 노응탁 (1560~1592), 노응호 (1574~1592)로 맏형을 따라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노응탁은 사마시에 합격하고 청주성과 금산전투에서 참전을 했다가 젊은 나이에 순절하고 노응호는 청주성 전투에 참전했다가 다시 돌아와 군량을 가지고 금산에 갔으나 두 형은 이미 전사한후 노응호도 같은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곳 유적지에는 충의문이 세워져 있는데요. 노씨 삼의사가 순절한 지 400여 년만인 1978년에 공주의 유지들이 모여 '삼의사 사우건립 추진회'를 결성하여 생가지에 사당을 짓고 삼의사로 명명한 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위에 세워져 있는 충의문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 봅니다. 삼의사의 정면 우측에 세워진 이 노응호의 정려는 후손이 살던 반촌리에 세워졌던 것을 1982년 삼의사를 건립 단장하면서 이곳에 옮겼다고 합니다.
만경 노씨 삼형제가 묻혀 있는 곳 바로 앞에는 공주의 기름진 쌀이 나오는 논이 있네요. 모두 수확이 끝나고 나서 이제 한가로운 풍광만 보이고 있습니다.
공주시 우성면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거주하는 만경노씨는 노극청을 시조 및 입향조로 하는 세거성씨입니다. 그의 아들 노판(盧坂)이 신라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진충왕 때 요동양척(遼東攘斥)의 공으로 평양백(平壤伯)에 봉해졌으므로 평양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금산의 칠백의총 경역 내에 있는 ‘일군순의비(一軍殉義碑)’ 비문에도 기록되어 있는 노응탁을 비롯하여 이들 삼형제의 충혼은 『중봉집(重峰集)』과 『항의신편(抗義新編)』 등에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2014년에는 충남 공주시 우성면 만경노씨 종친회 소유의 ‘노혁왕지’가 1일 충남도 유형문화재 제232로 지정되기도 했는데요. 왕지는 조선 초 임금이 사품(四品)이상의 문무관에게 직접 발급한 사령장으로 세종 7년(1425년) 교지(敎旨)로 명칭을 고치기 전까지 30년쯤만 발급된 매우 희귀한 자료라고 합니다.
조선 초기 문과에 급제해 사재감부정, 사헌부장령을 거쳐 세종 16년(1434년) 홍주목사를 지낸 노혁이 태종 1년(1401년) 진사급제로 받은 왕지가 남겨진 공주 만경 노씨 삼형제의 흔적은 충남 공주시 우성면 심산길 36-26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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