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근대화는 자의적이 아닌 타의적으로 이루어졌는데요. 그 여파는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조선 말기에는 수많은 유학자들이 활동을 했는데요. 그 당시에 대표적인 학자로 최익선 선생이 있었습니다. 최익현은 경기도 포천 출신으로 23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냈던 사람입니다.
홍살문이 세워져 있고 노랗게 물들어 있는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는 이곳은 예산의 최익현 선생의 묘라 자리한 곳입니다. 수많은 비판적인 상소를 올리고 18979년 유배가 끝난 후에는 고향에 머물다가 1900년 충청도 정산에서 제자를 길렀고 1906년 조서늬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전라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소고기로 잘 알려진 충청남도의 지역인 광시면에서 예당호로 가는 길목에 최익현 선생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입구에는 면암 최익현 춘추대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최익현은 이항로에게서 유학을 배웠으며 조선말 위정척사론과 개화론이 맞서는 때에 위정척사론의 대표 격 인물로 자리매김 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1909년 논산에 있던 면참 최익현 선색의 묘소를 이곳으로 이장하 ㄹ때 민가를 매입하여 재실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으로 묘를 옮기는 것이 수월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도로변에 자리한 이곳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전통가옥을 재실로 변환하여 사용하고 있는 예가 많지 않아서 조선 후기의 건축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이라고 합니다.
구한말 대 유학자였던 최익현 선생은 조선땅에서 사로잡힌 후 한양으로 옯겨졌다가 쓰시마(대마도)에 유배되었다고 순국하였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최익현 선생을 찾아서 참배하자 일본에 의해 이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지금도 일반 주택으로 활용되고 있어서 가을의 볕좋은 날에 빨래가 말려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과거의 역적 중 오늘의 5적(五賊)보다 더한 역적은 없었고 왜놈은 과거에도 남을 많이 유린하였지만, 오늘의 왜놈보다더한 왜놈은 없었다. 모두 궐기하라." 면암 최익현이 을사조약에 반대하며 전국에 의병을 봉기하는 격문
주의깊게 살펴보지 않는다면 그냥 스쳐지나가기에 좋은 위치에 자리한 이곳에 면암 최익현 선생의 묘가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에서 민족성을 지키고 독립과 백성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몸을 바쳤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 처단을 주장하는 상소와 함께 전국에 의병봉기를 촉구하는 격문을 내고, 전라도 태인에서 74세 나이에 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에 나서기도 했던 최익현은 흥선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며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려 유배되는 등 시련을 겪은 충신입니다.
'여행떠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제역사너울옛길과 이어지는 새로운 부여여행지 반산저수지 수변공원 (1) | 2024.12.21 |
---|---|
천연기념물이 된 탱자나무가 있는 부여 석성동헌과 석성향교 (0) | 2024.12.18 |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 내포의 한가운데 자리한 솔뫼성지 (1) | 2024.11.30 |
새롭게 옮긴 곳에 자리를 잡은 100년가게의 예산 한일식당 (1) | 2024.11.23 |
공주에서 국화꽃 길 여행해볼 수 있는 동학사 입구 산책로 (2) | 2024.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