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냥 한적한 시골마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부여의 한 중심지였던 곳이 홍산이라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고종8년(1871년)에 지어진 홍산동헌은 당시 군수였던 정기화가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방 후에는 홍산지서로 사용되었고, 홍산동헌내 위치한 형방청은 광복 후에는 개인에게 불하되어 주택으로 사용되던 것을 1985년 충남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2004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면에 보이는 홍산동헌은 一자형 평면으로 동향하여 세워졌는데, 정면은 7칸이나 측면에서는 좌측은 2칸이고 우측은 3칸으로 주간(柱間)을 다르게 구성하여 두었습니다.
건축양식은 무출목(無出目) 초익공계통인데, 외부로 돌출된 익공의 뿌리를 둥그스름하게 굴렸으며, 내부는 양봉(樑奉 : 보의 짜임새를 보강하는 짧은 부재)이 되어 퇴량의 단부(端部)를 받쳤는데, 양 몸에 초각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곳은 서해바다와 가까이에 있던 지형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금강과 만나는 홍산, 강경지역은 당시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쌀의 해상 운송의 요충지이기도 했던 곳입니다. 고려의 조운선들이 왜구의 습격을 받고 노략질로 인해 백성들의 고통이 극심해졌다고 합니다.
이곳은 예전에 업무를 보던 관청이었던 곳입니다. 지금의 지자체의 건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었던 거죠.
고려까지 함락시킨 왜구의 기세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자 나이 60의 최영장군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출정해 적진으로 향했는데 바로 이곳 홍산에 이르러서 왜구에게 크게 피해를 입혔다고 합니다. 최영장군은 왜구의 화살에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왜구를 공격하기 시작해서 적지않은 왜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전멸시키다시피한 최영장군의 업적을 기려 태봉산성 정산에 홍산대첩비를 세워두었습니다.
조용하게 최영장군은 기리면서 옆에 세워져 있는 비석군도 살펴봅니다. 이곳에서 근무했던 현감들의 흔적들입니다.
동헌의 아문(衙門)은 2층 문루 형식으로 1995년 원형을 복원했는데, 1964년 부소산성 안의 영일루(迎日樓) 자리로 옮겨진 이후 ‘부소산성 영일루’로 불리고 있씁니다. 홍산동헌이 자리한 남촌리는 백제때에는 大山縣의 중심지였으며 조선시대 초기에는 鴻山縣 縣內面의 지역으로서 조선시대 선조때에는 이몽학의 난이 일어남에 따라 그 이후엔 다시 鄕村으로 변모해 갔던 곳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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