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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나기

조선의 사대명필 자암김구선생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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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 신암면사무소 근처에는 조선시대에 명필로 유명한 사람의 묘소가 남아 있습니다. 1519년 홍문관부제학이 되었지만 같은 해에  11월 남곤(南袞) 등 훈구세력이 일으킨 기묘사화로 조광조(趙光祖)·김정(金淨) 등과 함께 투옥되어 개령에 유배되었다가 남해로 옮겨졌습니다. 1533년 풀려나 고향인 예산에 돌아왔지만 이듬해 죽었다고 합니다. 




국도변에 있는 김구선생의 묘소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습니다.



가볍게 걸어보는 마음으로 묘소로 걸어 내려가 봅니다. 인생의 마지막에 유배를 간 김구선생은 남해의 노도라는 곳이었습니다. 노도라는 섬이름은 옛날 이곳에서 배의 노를 많이 생산했다고 하여 노도(櫓島)라 불리게 된 곳입니다. 그 곳은 물고기가 훤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청정해역으로 볼락, 농어, 감성돔이 잘 잡히는 섬이기도 하죠.



묘소는 이곳에 있지만 노도에는 유배문학테마파크가 조성되어 있는데요. 화전별곡을 쓴 자암 김구, 남해문견록의 저자 후송 유의양, 금산, 망운산 등을 한시로 노래한 남구만, 남천잡록을 쓴 김용 등의 유배문학가를 중심으로 하는 학습장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김구 선생은 자학연구에 전념하여 학문이 조광조·김식과 견주었으며, 음률에도 뛰어나 악정에 임명된 적도 있습니다. 안평대군(安平大君)·양사언(楊士彦)·한호 등과 함께 조선 전기 4대 서예가로 손꼽힐 만큼 글씨에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서울 인수방(仁壽坊)에 살았다 하여 독특한 자암 김구선생의 서체를 인수체라고 합니다.




어릴때 자암 김구선생의 책을 읽어본 기억이 납니다. 『자암 김구의 화전별곡』.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13년간 긴 적소생활을 화전 땅에서 보낸 문신 서예가 자암이 남긴 삶의 흔적을 ‘화전별곡’의 가락으로 엮어낸 책입니다. 화전별곡과 함께 조선 후기 사상의 흐름과 역사적 사건 등을 수록되어 있습니다. 



남해의 그 아름다움을 찬미했던 김구선생 작가는 고전의 올바른 문화사적(文化史的) 정립과 사적(史蹟) 선례에 표제(表題)하여 후대로 전해지는 시간적 공간적 구조를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세월은 지나갔고 이제 묘소만이 그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보통 유배라고 하면 안 좋다고 생각하겠지만 김구선생은  토속적 남해유배지 역사문화 사적을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이해하고 그 시대적 사상과 이념의 가치관을 얼마나 수용 계승 발전하느냐 하는 것은 남해의 문화발전에 중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에전에 공주에 있는 충남역사 박물관에 있는 자암 김구 벼루를 감상한 적이 있는데요. 조선시대에 널리 유행한 일원연의 전형적 형식을 바탕으로 매화와 대나무, 두루미와 수달, 산수를 배경으로 낚시를 드리운 선인 등 조선 유학자들이 이상경으로 여겼던 도가적 자연소재를 벼루의 기능과 형태에 어울리게 배치하여 조형성 및 예술성이 높아 충청남도 유형문화 재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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