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떠나기

수심대와 강직했던 조헌의 흔적

728x90
반응형

금산을 지나가는 길에 수심대라는 안내판이 있어서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수심이 가득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물이 많은 동네라서 그런 이름이 붙은 건지 말입니다. 시간도 조금 있기도 해서 방문해보았습니다. 




마을은 그냥 조용한 느낌이 드는 곳이네요. 

이곳에 바로 수심대라는 곳이 있습니다. 수심대는 금산군 복수면 곡남리 252에 위치한 곳으로 중봉 조헌선생이 짓고 우암 송시열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해요. 



수심대라는 비석이 보입니다. 물과 마음이 담겨있다는 그런 의미인가요. 



읽어보니 큰 바위가 있고 소나무가 어우러진 자연의 경관 사이로 굽이쳐 흐르는 내의 양쪽에 마을이 3개로 나뉘어져 마음심 자의 모양과 같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네요. 



참 특이합니다 .바위를 두고 소나무 세그루가 멋지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위도 오래되어서 그런지 영험하게 느껴집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의병장으로도 활약했던 조헌 선생은 임진왜란때 봉기하기 전에는 옥천군 안읍 밤티에서 생활했는데 이곳도 자주 왔다고 하네요. 



나중에 색을 더 입혔는지는 모르지만 수심대라는 글자가 너무나 명확해보이는데요. 




정자만 있으면 이곳에서 한 나절을 보내는 것도 모자라 하룻밤도 잘 수 있겠습니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것이 바로 조헌의 사당이라고 합니다. 

조헌은 '성패(성공과 실패)와 이해(이익과 피해)'만 따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하는데요. 아군이 이길 성싶은 전투만 한다면 적군 역시 그런 계산을 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렇다면 전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소신을 가진 사람이었답니다. 



중봉 조헌 선생을 모신 이 사우는 처음에 1734년 (영조 10년) 곡남리 진동산에 창건되었으나 오랜 시간이 흘러 건물이 허물어지면서, 유림과 후손들이 현재의 위치에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조정에 나아갔을 때도 왕의 행동이 바르지 않으면 직언을 하다 파면 된 사람입니다. 



문은 닫혀있어도 담장이 낮아서 안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9월달에는 KBS에서 임진왜란이라는 드라마가 시작하더라구요. 당시의 의병장들은 어떤 생각으로 일어났을지 고경명의 마상격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의병을 모아 출전하던 중 각 도의 관원, 군인, 백성들에게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일깨우기 위해 말 위에서 작성하여 발표한 글이 마상격문이라고 해요. 



날은 언제 시원해질지 모르겠지만 벼는 잘 익어가네요.

한국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은 밥을 먹어서 그런것이라고 하는데 최근에는 쌀 소비가 많이 떨어진다고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식습관도 글로벌화되나 봅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