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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나기

계몽에 앞섰던 인물 예산 독립운동가 윤봉길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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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이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보았는데요. 계몽하는 일은 새로우면서도 바른 지식을 깨우쳐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리에 어두운 것을 바른길로 인도하기에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인습에 젖은 사람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충청남도에서 사람들을 계몽했던 대표적인 사람으로 예산의 윤봉길이 있습니다. 우연하게 이곳을 지나가다가 윤봉길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작지만 공원이 알차게 조성되어 있는 곳입니다.

 

 

 

계몽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과 세상에 대한 경험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광현당(光顯堂)은 ‘빛이 나타나는 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예산 도중도에는 윤봉길 의사가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예산에는 윤봉길의 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서 그의 행적과 그의 생각이 남겨진 글을 읽어봅니다. 윤봉길이 어떤 생각으로 길을 걸었는지 알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독립운동가들이 주목받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곳은 가나자와 윤봉길의사 암장지를 재현해둔 곳이라고 합니다. 

 

독립운동가로 잘 알려진 윤봉길의 집안은 몰락 양반가로 전형적인 농가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전통적인 한학을 비롯하여 국사와 신학문을 배운 윤봉길은 1926년 오치서숙 동학들과 농촌계몽의 첫 시도로 문맹퇴치운동을 생각하고 사랑방에 야학을 개설하여 계몽을 시도하였다고 합니다. 

 


독립운동가로서 폭탄을 던진 것으로 더 알려져 있지만 그는 본질적으로 계몽운동가였던 사람입니다. 계몽에 앞장섰던 그는 김홍일이 준비한 물통과 도시락에 장착한 폭탄을 식장에 던져 상하이 파견군 시리카와[白川義則] 대장, 상하이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타[河端貞次] 등을 즉사시켰던 것입니다. 

매헌 윤봉길 의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예산군은 충남에서 최초로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역입니다. 홍주의병을 이끈 수당 이남규(예산 대술면 출신), 상해 의거 윤봉길(예산 덕산면 출신), 광복회 김한종(예산 광시면 출신), 면암 최익현(묘소 예산 광시면) 등 의병, 의열투쟁, 항일결사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들이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벌써 10월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모두가 함께 잘 잘 수 있고 누군가에게 지배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계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드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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