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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나기

안개낀 성주사지에서 선불교와 대사찰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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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원류는 인도에 있으며 인도에서 발전한 것이지만, 완전히 꽃을 피운 곳은 중국이었다고 합니다. 즉 인도를 아버지를 두고 중국을 어머니로 둔 것이 아들이 선불교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보령의 성주산과 같은 곳에까지 미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주산파를 개산 한 무염도 그 조부 때에는 진골(眞骨)이었으나 아버지 범청(範淸)에 이르러서는 6두품(六頭品)으로 그 신분이 1등급 하강되었을 때였습니다.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국보 제8호)와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9호),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보물 제20호, 이하 중앙 삼층석탑),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 제47호, 이하 서 삼층석탑) 등 1기의 탑비와 4기의 삼층석탑이 국보와 보물로 되었다고 합니다.

성주사지를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천년역사관을 들어가서 확인해보시면 됩니다. 저는 여행하듯이 성주사지를 들려본 여정이었습니다. 

성주사지의 역사와 가람배치등을 확인해봅니다. 선불교는 보령시의 성주산문을 비롯하여 아홉 파(派)는 가지산문, 실상산문, 동리산문, 희양산문, 봉림산문, 사굴산문, 사자산문, 수미산문이라고 합니다. 선이란 범어로는 디야나(dhya-na), 팔리어로는 쟈나(jha-na)이라고 합니다.

성주사지에 자리했을 사찰을 처음 창건한 법왕은 백제 제29대 왕이라고 합니다. 법왕의 이름은 선(宣), 효순(孝順)이며 아버지는 혜왕(惠王)입니다.

이렇게 넓은 곳에 건물이 모두 들어서 있을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성주사지에는 국보 제8호인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聖住寺朗慧和尙白月寶光塔碑)를 비롯하여 4기의 석탑과 석등·석불입상·당간지주·석계단 등이 남아 있습니다. 

 백제의 멸망 직전에 이 절에 큰 적마(赤馬)가 나타나 밤낮으로 여섯 번이나 절을 돌아다녔다는 성주사는 백제의 멸망을 예시해주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이렇게 기단석만이 남아 있습니다. 

봄에 완연한 녹색의 싱그러움이 있다면 가을에는 총천연색의 화려한 끝맺음이 있지만 여름에는 에너지가 넘치는 계절이었다가 이제 가을이라는 계절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주의 원리인 브라흐만과 개인 속에 있는 진리인 아트만의 일치를 꿰뚫어 보는 수행으로 정착되어 갔는데 불교와 요가선은 특유의 선사상으로 발전을 해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보령의 성주산은 단풍으로 잘 알려진 산이어서 그런지 보령의 캐릭터가 성주산 단풍을 원형교차로에서 들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전에는 보지 못했는데요. 이번 방문때에는 새롭게 조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으로 이전되어 가고 하나의 정신체계로 확립이 되기도 합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1,200년의 역사를 가진 선불교의 한 공간이었던 성주사지에서의 시간은 저에게 깨닫게 하는 순간이 되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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