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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나기

바다 목장이라고 불리던 창리포구의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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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바다에서 바다의 목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해산물과 물고기가 많이 잡히던 창리포구는 1980년대 서산 AB지구 방조제 간척 사업으로 인해 생산력에 많은 타격을 받는 곳이라고 합니다. 조선 시대 주사창[수군의 무기를 보관하는 군기고(軍器庫)]가 있어서 창리포구라고 불리던 이곳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당시 주사창의 규모는 대청 5칸, 군기고 13칸, 잡물고(雜物庫) 5칸이 자리했던 곳입니다. 




 ‘서산 어민들의 터전’으로 회자될 만큼 어업의 비중이 높은 마을인 창리포구에는 수백 년의 전통을 이어온 당제가 있는데요. 이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삼일[음력 1월 3일] 상당(上堂)인 산제당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내려와 하당(下堂)인 영신당과 장승, 샘 등을 돌며 각각 성대한 당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해가 뜨면 지게 마련인데요. 해가 저무는 방조제의 모습은 아름답네요. 서산군수 박시언이 이곳에서 왜구를 격파한 데서 연유했는데요. 그때부터 공식 명칭은 왜현리(倭懸里)불리기도 했습니다. 




창리포구의 주민들은 예전에는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하여 근해에 어살을 놓아 숭어·농어·도미·장어·민어·우럭·도다리 등을 주로 잡아 먹고 살았는데요. 닭섬 주위에는 그물을 달아 살을 먹이는 어살을 놓았으며, 대나무를 이용한 죽방렴(竹防簾)을 대섬에 매어 고기를 잡았었다고 합니다. 



서산시의 관광지도를 보니까 가볼만한 곳이 많네요. 




 제당에 오르면 그림 같은 포구의 절경이 아득하게 펼쳐지고, 사이좋게 마주한 안면도·황도가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의 서해안 일원에는  ‘조기의 신’이자 ‘풍어의 신’으로 급속히 부상한 임경업 장군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창리포구에서는 물고기를 많이 잡게 해달라고 매년 정월 초사흗날 상당인 산신당과 하당인 영신당(靈神堂) 그리고 장승, 샘 등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인 영신제를 지냅니다. 




창리포구에는 적지 않은 배들이 있습니다. 현재 포구에는 60여 척의 어선들이 있는데요. 이는 서산 지역에서 가장 많은 어선 보유량이지만, 멸치잡이 3척을 제외하면 모두 천수만 내에서 고기를 잡는 1~2톤 규모의 소형 선박들입니다. 




배에 올라서서 바다를 바라보니까 감회가 남다릅니다. 뱃기는 바다가 보이는 당집 앞에 세우는데, 창리포구가 전성기일 때는 100개가 넘는 뱃기가 펄럭였다고 합니다. 






작년까지 이 부근에는 1016.2㏊ 규모의 ‘체험·관광형 연안 바다 목장’을 조성했다고 하는데요. 해역에는 인공 어초와 바다 숲 등을 만들어 숭어, 우럭, 바지락, 굴 등의 어패류를 풀어 자연 상태에 가까운 해양 생태계를 조성하고, 바다 목장에는 테마 파크인 해상공원이 조성된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모두 조성된 것 같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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