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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나기

충절 고장 논산에 있는 충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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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헌사는 박문수가 모셔져 있는 천안과 논산시에 있는 충헌사가 있습니다.

이번에 가본 곳은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 있는 충헌사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청주양씨의 시조를 모신 사당이기도 한 충헌사에는 충절을 지켰던 퇴은 양치 선생, 대봉 양희지 선생, 도곡 양응춘 선생, 어촌 양훤 선생으로 네 분이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홍살문이 서원이나 향교가 아니지만 사당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곳의 마을에는 유명한 분들이 많이 사신듯 곳곳에 다양한 흔적이 남겨 있습니다.



충헌사를 정면에서 바라보면 좌측이 관리소이며 현재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우측에 있는 건물은 경모당으로 후손들을 위해 유학하던 곳입니다. 뒤로 심어져 있는 노송들이 눈에 띄이네요. 



청주 양씨의 시조가 된 양기 선생들은 중국 원나라에 살던 사람으로 고려 말 노국공주를 모시고 고려에 왔다가 귀화를 하여 공민왕을 보좌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청주 양씨의 시조가 된 것이죠. 



서원이 아니지만 서원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안에는 충헌사로 들어가는 내삼문이 있고 밖에는 경학을 하는 건물이 있는 형태는 일반적인 향교의 구조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후손들이 자신들의 시조를 기리고 그 후손의 계보를 알리기 위해 청주세록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청주세록’은 모두 7권 4책으로 되어 있다. 1책은 양기의 사적을 기록한 ‘충헌공암곡사실(忠憲公岩谷事實)’,2책은 양허국의 문집인 ‘졸헌유고(拙軒遺稿)’,3책은 양훤의 글을 모은 ‘어촌유고(漁村遺稿)’,4책은 양도남의 글을 모은 ‘무금당유고(無禁堂遺稿)’ 순으로 되어 있다. ‘어촌유고’ 만 3권에서 6권까지 4권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1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각기 흩어져 있던 것을 한말(韓末)에 모아서 간행하였다. 양기는 공민왕의 왕비가 된 노국공주(魯國公主, ?~1365)를 따라 고려에 온 후 귀화한 사람이다.』



충헌사는 이곳의 건물 배치는 재실(齋室)인 경모당이 앞쪽에 배치되고 사당(祠堂)인 충헌사가 담장을 구획으로 하여 그 안쪽으로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배치는 일반적으로 사당이 재실보다 출입구에서 멀고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과 비교했을 때 특이한 것이라고 하네요. 




경남 창녕에 가면 그곳에도 청주 양씨의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의 대표적 문화재는 청주양씨 문중의 ‘광산서당(光山書堂)’과 ‘청주양씨 세고목판(淸州楊氏 世稿木板)입니다. 




후손들이 거주하고 항상 찾아오는 곳이어서 그런지 관리가 어느 정도 되고 있는 곳입니다. 




2016년에 세워진 이 신도비는 시조 상당백(上黨伯충헌공(忠憲公)이 원나라에서 고려에 동래(東來)한 지 어언 700년 가까이 흘렸는데요. 본래 신도비는 1927년 황해도 연백군 유곡면 영성리 묘역에 세웠으나 묘소 참배가 불가능해 2014년 대종회에서 신도비를 건립하기로 의결하여 26개 문중과 112명의 후손이 공사비 4천여 만 원을 만들어 세우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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