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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나기

아무나 오시게나 논산명재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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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집에 있을때는 현관문을 꼭 닫고 있는편인데요.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는 불청객이 찾아오는 것이 싫어서이기도 합니다. 단독주택들 대부분 보면 대문이 꼭 닫혀있는 경우가 더 많죠. 도둑들 때문만은 아닐겁니다. 이웃과의 소통이 부족한 것이 우리들이니까요. 




안동 하회마을을 아주 오래전에 가본적이 있는데 그곳도 대부분 문이 굳게 닫혀있을 뿐만이 아니라 담장이 너무 높아서 안을 보기가 힘든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논산시 노성면에 있는 명재고택이라는 곳은 담장도 없고 대문도 없고 그 흔한 목책 하나도 없더라구요. 자신은 가릴것이 없다는 그런 의미인가요. 



논산명재고택 옆에는 이렇게 작은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장서가 있을까 혹은 옛날 책이 있을까라는 기대를 가지고 들어가보았습니다. 




안에는 마침 행사를 준비하는 분들이 작업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 도서관이 있는데 생각보다 책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난방은 별로 안하는지 발이 조금 시려웠네요. 



이렇게 많은 장독대를 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절에서 장을 담궈서 팔기도 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장독대를 보긴 했지만 일반 한옥이 이렇게 많은 장독대를 보유하고 있다니 놀랍더군요. 양반가문이라고 해서 그 비법을 후세에도 전하는 모양입니다. 



저를 처음 맞이해주는 건물은 바로 지면에서 높게 만들어져 있는 누마루입니다. 한여름에 저곳을 활짝 열어놓고 밖을 쳐다보고 있으면 양반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듯 합니다. 



이곳은 안채라 출입을 자제해달라고 해서 그냥 바깥쪽에서 사진을 한 장만 찍었습니다. 



이곳은 지붕이 초가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노비가 거주하지 않았을까요. 

명재고택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내려오더라구요. 명재 윤증의 아버지는 병자호란이 발생했을때 오랑캐의 사신을 죽이고 명과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로 피신하여 자결을 서약했다가 부인만 자결하고 홀로 살아남아 도망친 것이 큰 흠으로 남아 다시는 벼슬길에 올라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마 그런 아버지의 행동은 윤증에게 큰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과거를 보지 않고 그냥 공부만 했던 윤증은 어떤 생각을 하며 평생을 보냈을지 궁금해집니다. 그 고택앞에는 이렇게 연못이 있고 마치 섬처럼 만들어진 공간이 하나 중간에 있었습니다.  


자신이 존경하는 스승인 우암 송시열이었지만 아버지였던 윤선거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을 기점으로 결국 크게 틀어지죠. 그래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다고 합니다. 소론의 거두는 오늘 고택의 주인인 윤증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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