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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을 준비하며 보수중인 꿈꾸는 백발의 청년 이상재선생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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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023년에는 전국의 곳곳에 생생문화재 사업이 추진이 되었습니다. 그곳중에는 서천의 이상재선생 생가도 있었습니다. 가장 청년다운 삶을 살았던 이상재선생은 촌철살인의 말을 남겼던 사람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조선말, 월남 이상재(李商在․1850~1927)가 의정부의 총무국장을 맡았었는데 고종 임금이 ‘전운사’라는 관청을 다시 설치하려고 했을 때 단호하게 거부했다고 합니다. 전운사는 백동화를 남발, 나라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가 폐지된 관청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생생문화재사업이 추진되었던 이상재 선생의 생가는 지금 보수중에 있었습니다. 짚으로 만든 지붕은 매년 보수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올해에는 열린 책방 ‘청년’은 지역주민이 도서 구매를 위한 1만원의 후원으로 시작됐으며, 총 122명의 후원으로 월남 이상재 선생 생가 사랑채에 만들어졌습니다.열린 책방 ‘청년’은 연중 휴관일(월요일·설·추석)을 제외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충청도 서천의 한산 땅에는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 1850~1927)의 생가가 잘 보존되어 있고 유물관도 세워져 있습니다. 

올해 월남 이상새 선생 생가지 사업은 문화재청 생생문화재 공모사업에 선정되고  '백발의 청년 이상재와 나누는 꿈 이야기'라는 주제로 1박 2일 프로그램인 '꿈꾸는 이상재 마을', 서천의 독립운동가와 문화유산을 찾아 나서는 '꿈을 나누는 문화유산 외교사절', 상설 체험과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꿈을 키우는 이상재 생가, 열린 책방'으로 구성돼 운영되었습니다. 

매년 겨울에는 새해를 준비하며 지붕을 보수하였던 것들이 옛 사람들의 중요한 행사였다고 합니다. 농번기가 끝나고 나서 백성들이 집을 보수하면서 내년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살아생전에 월남 이상재 선생은 해학이 담긴 말을 많이 했었다고 합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며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서  많은 것을 듣고 보려고 했으며 사람들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이상재 선생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초가집으로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이며 대문은 솟을대문을 두었습니다.  특징으로는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 짓는 내외담 없이 생가터에 들어서면 안채가 훤히 개방된 구조입니다. 

백발의 청년 이상재선생에게도 꿈이 있었다고 합니다. 1910년 경술국치 후 대한제국이 망하고 일제 치하가 되자 관직을 버리지 않은 자들은 과거 친일 개화파였든 수구파였든 누구든 친일파로 변질되는데 이상재는 양심 인사로서 일체의 관직을 내려놓고 은거하면서 그는 계몽 활동에 나서 교육자로서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몇일 남지 않은 2023년에 월남 이상재선생 생가를 찾아서 그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2024년에 서천 월남 이상재선생의 생가는 어떤 프로그램으로 사람들과 만날 것인지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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