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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나기

논산의 중심이었다는 은진면의 비석군과 은진관아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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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내의 동남쪽에 자리한 덕은(德恩)과 시진(市津)의 두 현이 합쳐서 생긴 은진은 금강유역에 있어 이곳에 있는 강경포(江景浦)의 강창(江倉)에 은진의 세곡을 모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은진면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것이 바로 은진사랑 벚꽃거리라는 이정표입니다. 봄에 이곳을 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벚꽃을 보기 위해 한 번 와봐야겠습니다. 

지금 정비사업이 진행되는 은진면입니다. 살펴보면 조선시대의 여지도서에 따르면 은진현은 주변의 부여, 연산, 석성현보다 많은 인구가 모여 살았다고 알려진 곳입니다. 논산의 곳곳을 보면 은진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곳이 적지 않습니다. 관촉사의 대표 불상도 은진미륵입니다. 

이곳에서 탐정호는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정표가 잘되어 있으니 이정표를 보고 찾아가시면 됩니다. 

지금 도시재생을 이야기하는 것은 나이 들어가는 생명체처럼 쇠락되기 때문입니다. 대전의 동구에도 그리고 대덕구에도 동춘당공원으로 알려진 성씨는 바로 은진송씨입니다. 논산에는 은진면이 지금도 그 나아서 그 유래를 알리고 있습니다. 

도시 혹은 고을, 행정구역은 시대가 지나면 변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크기도 하지만 계획적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것이 현재의 도시모습입니다. 논산에서 근대화시기에 가장 빠르게 성장한 것은 강경이라는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은진면사무소의 바로 옆에는 작은 현대식 정자와 함께 은진면 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은진 현감 및 충청도 관찰사의 불망비와 공적비를 모아두었는데 총 18기의 비석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곳으로 이전된 것은 2005년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모든 송(宋)씨의 시조는 당나라의 호부상서였던 송주은으로 은진송씨는 이들 3형제 중 둘째 송천익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비석군의 제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살펴보면 조선시대 무명 불망비를 시작으로 박사휴 불망비까지 있습니다. 그외에도 심의신 부망비, 박제광 물방비, 심한주 거사비등이 있습니다. 

 

은진면사무소의 옆에는 체력단련식과 작은도서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은진면 이야기에는 좋은 이야기도 쓰여 있습니다. 사람은 그곳 산야와 물길을 닮는다고 합니다. 세상은 우연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모든 참된 삶은 자연스러운 만남에 있다고 합니다. 



은진면사무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은진관아골 건강복지센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관아골의 행복학습교육 지속 프로그램이 둘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운영이 안되고 있지만 마을학교와 성인학습 프로그램, 이 운영 시행처는 시청 평생학습과 이고 마을교육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큰 지역이었다고 하는데 조용한 분위기입니다. 은진면의 관아골 복지사업으로 마을협동조합 형태로 진행하였다고 합니다. 은진면민의 소득 증대에 이바지하여 삶의 윤택함을 추구하고자 시행하였으며, 차후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공동작업 진행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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