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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나기

임진왜란 강력한 왜군에게 주저하지 않았던 영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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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역사에서 우리에게 큰 상흔을 남긴 것은 일제강점기였지만 그때보다 훨씬더 큰 상흔을 남긴 것은 임진왜란때였습니다. 당시에는 힘이 없었던 민중들에게 가혹하게 살육을 했던 왜군들은 공포의 상징일 수 밖에 없었죠. 게다가 조선조정은 갈라져 있어서 제대로 대항도 하지 못했습니다. 

공주시 계룡면이라고 하면 주변사람들이 계룡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공주시에는 계룡면이라는 지역이 따로 있습니다. 이곳에는 영규대사 비가 따로 세워져 있습니다. 

비를 바라보면서 영규대사의 의지를 기려봅니다. 계룡면사무소 앞에는 영규대사가 벼슬을 제수받은 정려각이 있고 그 옆에는 비각 안에 모셔졌던 비석이 바깥으로 나온 사 두동강난 작은 비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안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이제 영규대사묘를 보기 위해 올라가봅니다. 

국사와 야록에서도 영규대사가 금산땅에서 전몰하였다 하였고 불교통사에는 대사가 의승장으로 수백명의 승병을 규합하여 청주에서 왜적과 격전하다가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영규대사는 공주가 지정한 역사인물이기도 합니다. 영규대사의 성은 밀양박씨이며 이름은 영규이며 호는 기허입니다. 공주 판치에서 출생하였는데 선세의 계보와 사적은 모두 미상이라고 합니다. 

 

묘에 올아와서 보니 앞에가 탁트여 있는 것이 풍광은 좋은 곳입니다. 영규대사는 금산전투에서 부상당한 몸으로 갑사로 가다가 월암리 지금의 정려비각 부근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영규대사묘를 보고 내려오니 마을의 야트막한 언덕에 정자와 함께 노거수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영규대사묘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잠시 계룡저수지를 들려보았습니다. 이곳은 공주에서 투자해서 걷기 좋은 길로 조성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잠시 멈추어서서 봄의 향기를 맡으면서 데크길을 걸어봅니다. 17일에는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계룡산 갑사 주차장 앞에서 괴목대신제가 열렸다고 합니다. 괴목은 임진왜란 때에는 영규대사와 많은 승병들이 모여 그 그늘 밑에서 작전을 세우기도 했던 호국불교를 증거 하는 신수(神樹)로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공주에는 유평리에 영규대사 묘(靈圭大師墓, 도 기념물 제15호), 월암리에 영규대사비(靈圭大師碑, 문화재자료 제56호)가 있으며 그를 제향하는 표충원(表忠院, 문화재자료 제52호)이 갑사에 있고 1813년(순조 13)에는 충절비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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