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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나기

천안에서 만난 석오 이동녕선생의 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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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라고 하면 무언가 큰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꼭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광복절이 있는 8월에는 유독 독립운동가가 많은 천안은 의미있는 도시입니다. 



천안 석오 이동녕 선생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대의입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큰 도리를 대의라고 하는데요. 그 대의를 지킨 분이었다고 합니다. 




석오 이동녕 선생의 생가지가 있는 곳에는 석오이동녕기념관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크지는 않은 곳이지만 8월에는 한 번쯤 찾아가볼만한 곳입니다. 





석오이동녕기념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이동녕선생을 기리며 천안시민들의 뜻을 모아 선생을 추모하면서 건립한 것입니다. 

 



유리안으로 태극기와 그 앞으로 석오 이동녕선생의 모습이 비추어집니다. 




고향 서당에서 전통 교육을 받고 10세 때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후곡리의 할아버지 이석구(李錫九)의 집에서 소년시절을 보낸 이동녕 선생은 1892년 응제진사시(應製進士試)에 합격하고  1896년 독립협회에 가담, 개화 민권의 기수로 구국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4월 13일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의 초대 의장으로 선임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탄생을 주선하였다. 4월 13일 28명의 동지들과 임시정부 수립을 내외에 선포하고 얼마 뒤 국무총리로 취임합니다. 






오래되어 보이는 생가의 안으로 걸어서 들어가 봅니다. 천안에는 독립운동가들의 생가지가 잘 보존이 되어 있습니다. 이곳말고도 유관순 열사 생가지도 잘 보존이 되어 있죠.



생가지가 있는 이곳에는 애국선열의 숭고한 정신이 아름다운 태극 꽃으로 피어나 태극 동산을 이루는 것을 형상화한 태극 동산, 이동녕이 평소 자주 인용하였던 ‘산유천석(山溜穿石)’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화강암 휘호석, 이동녕의 생가지 뒷산의 왜가리 관찰대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급성폐렴으로 쓰촨성[四川省]치장[綦江]에서 세상을 떠난 이동녕 선생은 조국광복 후 1948년 사회장으로 봉환식을 거행했고, 효창원에 안장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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