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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나기

계족산 자락에 전해지는 소소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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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은 봉황이 머무는 곳이라고 해서 대전의 명산중에 하나로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지만 황톳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대전 분들은 산책삼아 많이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머니도 주말마다 이곳 계족산 산행을 즐기시는데요. 계족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있어서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저도 중학교 동창 친구가 하는 식당이 있어서 이곳을 자주 오는 편입니다. 이곳 주변에는 친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씁니다. 오래간만에 계족산 위쪽으로 올라가 볼까요.




예전에는 그냥 생각없이 지나쳤는데 오래간만에 보니까 오래된 고건축물이 보여서 가까이 가봅니다.  




대덕구에는 은진송씨가 많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그 분들이 거주하던 고택이 여러채 남아 있습니다.  




이 집은 제월당 및 옥오재로 제월당은 조선 숙종 때 예조판서를 지낸 송규림이 숙종 2년 (1676년)에 자신의 호를 따서 이름을 지은 별당이라고 합니다. 제월은 송규림의 조상인 쌍청당 송유의 호의 쌍청에서 따온 말로 조상의 맑은 기품을 닮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제월당과 옥오재 옆으로는 작은 공원이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제월당과 옥오재는 살림집인 안채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가묘가 함께 있어서 조선 시대 양반 가옥의 구조를 살필 수 있는 고택입니다. 




고택을 둘러보고 위쪽으로 조금더 걸어서 올라갑니다.  




이곳에는 쌍청과 옥오재를 만든 송상기에 대해 접해볼 수 있도록 설명을 곁들여주고 있습니다. 송상기의 호가 옥오재로 예조판서를 지낸 송규렴의 아들로 송시열과 송준길에게 사사하고 28세 때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보직되었다가 다양한 직책을 역임하였습니다.  




이곳을 후곡공원이라고 부르네요.  동춘당 송준길, 쌍청당 송유, 송애 김경여, 옥오재 송상기는 모두 대덕구에 흔적을 남긴 인물들입니다. 




올라가는 길목에는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정자 같은 것이 있는데요. 일정 거리를 두고 만들어져 있어서 산행중에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합니다. 

 




지난번에 왔을때는 계족산 무제 이야기는 없었는데 지금은 벽에다가 계족산 무제에 대해 접해볼 수 있도록 설명을 해놓았네요. 계족산은 한밭의 모태인 회덕 고을의 진산으로 오랜 세월 숭배를 받아온 산이라고 합니다.  그냥 매일 자주 와보다 보니 그런 신성한 산이라는 것도 몰랐네요. 



계족산에 내려오는 무제는 회덕현 차원의 성대한 기우제였다고 하는데요. 회덕의 모든 주민들이 한 마음 한뜻으로 비를 기원함으로써 가뭄이라는 시련을 극복하고 함께하는 대동 정신이 공동체를 형성하게 했던 거죠. 




녹음이 짙게 우거진 곳까지 오면 계족산의 자그마한 사찰 용화사가 나옵니다. 저는 우측으로 산행을 더 하기 위해 올라갑니다.  



걸어 올라가는데 앞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쏜살같이 다람쥐가 앞으로 지나가네요. 순간 포착을 못했습니다. 엄청나게 빠르네요.




봉황이 깃들여 있는 산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봉황상도 조형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위쪽으로 걸어올라가는 방법이 있고 천천히 둘레길을 걷는 방법도 있습니다.  봉황은 상상속의 동물로 성스럽고 귀한 동물로 옛날에 조선 왕조에서도 봉황 문양을 사용했죠. 봉황마당은 주민의 뜻을 모으고 한 고승의 자문을 참고해 현 위치에 자리를 정한 것으로 이곳에서 빌면 소망을 성취하고 계족산의 신비로운 기운을 얻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랑의 열쇠도 계족산의 봉황마당에 있습니다. 아직은 자물쇠가 많이 걸려 있지 않습니다. 



계족산 산행길에 있는 양쪽에 심어진 소나무들은 정이품 소나무 후계목으로 1996년 속리산 정이품 소나무의 씨앗을 받아 키운 것이라고 하네요. 계족산에 스토리텔링이 더해져서 즐거운 산행을 하면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서 좋은 여행지로 점점 더 변해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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