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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나기

밤에 찾아도 좋은 공주 효심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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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 열녀문이나 효자를 의미하는 비를 세웠다는 이야기는 적지 않게 들어봤습니다. 그런데 그 효를 컨셉으로 만든 공원이 공주에 있더라구요. 공주에 있는 국고개는 해발 10m에 불과한 높이이지만 공주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곳입니다. 그곳에 효심공원이 하나 만들어졌습니다. 



옛것의 가치나 아날로그가 가진 매력과 사람이 주는 가치가 점점 희석되어 가는 요즘 이런 공원이 만들어진 것은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직접 찾아가서 보니 국고개에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이복이라는 효자가 어머니 봉양을 위해 국을 얻어 품에 안고 가다가 이 고개에서 국을 쏟아서 국고개라고 이름이 붙여져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효심공원 같은 곳은 밤에도 이렇게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불을 켜주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입구에는 세워진 효심공원의 효열문이 아마 가장 최근에 세워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효심공원이 왜 이곳에 자리하게 되었는지 읽어봅니다. 

야간에도 불이 있어서 읽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2016년에 건립된 효심공원은 부지 1615㎡에 총 13억4000만원의 사업비를 투입해서 조성하였습니다. 삼국사기 문헌에 최초로 기록된 효자 향덕과 국고개 전설의 주인공 효자 이복의 효행비와 비각, 효행관련 상징 조형물인 효열문, 효원탑, 효행상, 행복가족상과 건립 기념비가 공원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석탑이 아니라 조형물 형태로 만들었는데요. 어디에서 보아도 삼각형 같아 보이지만 조금씩 다른 모습을 연출하는 조형물이네요.  



효심공원에서는 효자 이복에 대해서 조금더 친숙하게 접해볼 수 있습니다. 이복이라는 사람의 행실과 어머니에 대한 효를 다시 한번 접해보니 저를 다시 돌아보게 되네요. 



매번 부모님에게 잘하고자 생각하지만 그것이 생각만큼 실천되지 않은 저로서는 효자 이복의 이야기가 남 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9호로 지정된 이곳의 비는 우리나라 기록상 최초의 효자인 향덕의 효행을 가리는 비석이라고 합니다. 신라 경덕왕 때 부모가 가난과 병에 시달리자 자신의 살을 베어 봉양하는 등 지성을 모셨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던 이야기이죠. 




새로 만든 비석도 우측에 자리하고 있는데요. 아마 공주의 원래 지역에 있는 비는 그대로 둔 채 그 이야기만 가져왔기 때문이 아닐까요.  



행복해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행복한 가족 그자체로도 소중한데 말이죠.  남보다 잘산다는 것이 경제적으로 부유하다는 의미만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오늘 저도 조금은 행복해져 보려고 합니다. 


소학리의 1741년(영조 17)에 세운 정려비의 앞면에는 "지극하여라, 효자여/떳떳한 마음으로 온전함을 이루었으니/이미 허벅지 살을 베었는데/ 또 다시 종기를 빨았도다/임금께서 이를 가상히 여기시어/ 땅을 주고 집을 내리셨다/마을이 효자로서 이름이 났으니/영원토록 그 이름 계속될지어다" 라는 시가 쓰여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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